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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거리로는, 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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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단거리로는,
살지 않기로 했다

서랍을 열면 오래된 다이어리들이 포개져 있다. 어떤 표지는 햇빛에 바랬고, 어떤 것은 모서리가 닳아 둥글어졌다. 거기엔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던 시절의 내가, 매일 아침 자신에게 건네던 말들이 적혀 있다. 다이어리는 결국 나와 나누는 대화였다. 묻고, 더듬더듬 대답하던 자리였다.

한 칸 한 칸은 너무 작아서, 그날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시간당 얼마를 받는지,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 그런 사소한 문장들. 그런데 이상하지. 그 작은 칸들이 십 년쯤 포개지면, 어느새 나는 처음의 자리에서 한참 멀리 와 있다.

내가 고른 자리

결혼이라는 것을 오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내가 고른 자리. 태어난 곳에 그대로 머물러 살아도 됐을 텐데, 굳이 모르는 사람과 마음을 섞고 돈을 섞고 생의 가장 중요한 순서들을 전부 털어 한곳에 부어 버린 일. 그러니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결국 내 몫이 된다.

달리 갈 데가 없으므로, 이곳이 가장 살 만한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달간 먼 나라를 떠돌다 돌아와도 결국 그 집 문을 다시 여는 거라면, 나는 이 집을 나답게 만들 수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가장 안쪽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을 때, 바깥의 많은 일들은 있다가도 사라지며 어떻게든 풀려 갔다. 중심이 잡혀야 돈도 벌리더라는 말을, 나는 한참 뒤에야 믿게 되었다.

팔십 점을 들고 태어났다는 말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한 사람의 성취를 들여다보면, 제 노력으로 이룬 것은 고작 이 할쯤이고 나머지는 운이었다고. 처음엔 화가 났다. 이만큼 애써 왔는데, 어떻게 그걸 운이라는 말로 덮느냐고.

그런데 가만히 헤아려 보니,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부모 곁에서 자랐는지 — 그 두 가지만으로 이미 많은 것이 정해져 있었다. 내가 고를 수 없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사라는 것이 마음의 장식이 아니라 하나의 실력이라는 걸 늦게 알았다. 태어난 자리에 감사하면 오십 점을, 곁을 지킨 사람에게 감사하면 삼십 점을. 그렇게 팔십 점을 손에 쥐고 시작하면, 남은 이십 점을 메우는 일은 한결 가벼워진다. 빈손인 줄 알았던 자리에, 사실은 이미 많은 것이 놓여 있었다.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위한 노트와 만년필

불편함이라는 길

사람에겐 두 가지 사는 법이 있다. 편하게 사는 법과, 조금 불편하게 사는 법.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처음엔 불편하다. 걸음마가 그랬고, 숟가락질이 그랬다.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모른 채 태어나, 불편한 것을 편안한 것으로 바꿔 가며 여기까지 왔다.

나이가 들어 다시 무언가를 처음부터 배우는 일은, 어쩐지 우스워 보인다. 발음도 서툴고 외운 것은 자꾸 달아난다. 곁에서 누군가는 묻는다. 집이 없느냐, 돈이 없느냐, 왜 그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그러나 나는 안다. 불편함이 편안함으로 바뀌어 가는 그 길 위에서, 사람은 자란다. 자존도, 영향력도, 더러는 돈마저도 거기서 생긴다. 너무 편안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를, 나는 살아 있음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서른은, 다 이루는 계절이 아니다

요즘은 눈을 뜨면 비교할 것이 천지다. 잠깐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이, 누군가는 집을 샀고 누군가는 어딘가로 떠났다. 다들 더러운 것은 치우고 찍는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그 환한 장면 쪽으로 기운다. 그렇게 격차가 마음에 쌓이면, 어느 날 우울이 기본값이 되어 버린다. 즐겁기 위해 무언가를 보는 게 아니라, 우울하지 않으려고 보게 되는 자리. 그 자리가 무섭다.

그래서 다들 단거리를 뛴다. 십 년 안에 전부 끝내야 한다는 듯이. 돈도 단거리, 일도 단거리. 그러나 가장 서툴고, 가장 경험이 적고, 가장 실수가 잦은 때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면 — 인생은 미완의 졸작으로 끝나 버린다. 서른의 솜씨로 다 이뤄 버린 사람은, 마흔과 쉰의 명작을 영영 만나지 못한다.

나는 서른에 다 이루지 않기로 했다. 일부러 남겨 두기로 했다. 더 깊어질 마흔에게 한 자리, 더 너그러워질 쉰에게 한 자리, 그 너머의 나에게도 한 자리.

천천히 오래 읽고 싶은 책을 찾는다면

미래의 나에게, 자리를 비워두는 일

기회는 한 군데 몰려 있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길 위에 띄엄띄엄 흩어져 있었다. 그러니 걸어가야 잡을 수 있다. 멈춰 서 있으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 그리고 잡으려면 그만한 체력이 필요하다 — 마음의 체력, 돈의 체력, 견뎌 온 시간의 체력이.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나를 미리 심어 두기로 했다. 마흔의 나에게 한 사람, 쉰의 나에게 한 사람, 예순의 나에게 한 사람. 내가 그들을 믿어 주어야, 그들이 비로소 거기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래의 내가 없다고 여기는 순간, 그 미래에서는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기대하는 미래만이, 나를 위해 조용히 일을 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도, 오래전 누군가 꿈꿔 준 사람이다. 스무 살의 내가 서른의 나를 그려 두었기에, 이만큼이라도 여기 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흔에게도, 쉰에게도 자리를 비워 두어야 한다.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지금의 나 하나만 데리고 살지 않기로 한다.

살아 보니 신기한 일이 있다. 그저 살기만 했는데, 어디선가 자꾸 희망이 생긴다는 것. 생각만으로는 아무 희망도 오지 않았다. 실제로 한 걸음 디뎌 본 경험치가 있어야, 비로소 다음 칸이 채워진다. 오늘도 나는 다이어리를 펼친다. 한 칸은 여전히 작고, 표시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은 칸들이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 이제는 조금 안다.

단거리로는 살지 않기로 했다.
나는, 길게 걷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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