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삼성전자를
담는가
외국인 투자자의 손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풍경이 보인다
시장에는 가끔 이런 순간이 온다. 모두가 팔 때 누군가는 조용히 산다. 혹은 반대로, 모두가 사려 할 때 누군가는 이미 충분히 담아두고 슬쩍 빠져나간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다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은 나보다 무언가를 먼저 본 걸까, 아니면 그냥 크기가 커서 파장이 다른 걸까.
5월 초, 삼성전자 주가가 하루에 14퍼센트 넘게 올랐다. 외국인이 단 며칠 만에 7조 원어치를 순매수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그들은 팔고 있었다. 24조 원어치를 5거래일 만에 던졌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나는 무언가 끝나는 것처럼 느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왜 돌아왔을까. 여러 이유를 읽었다. 미국 반도체주가 강세를 보이면서 그 흐름이 한국 시장으로 번졌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 원을 넘겼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756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한국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 100조와 영업이익 50조를 동시에 돌파했다는 말도 나왔다. 숫자들이 줄지어 나왔고, 나는 그것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숫자들을 외국인들은 얼마나 먼저 보았을까.
영업이익
영업이익 증가율
순매수 전환액
AI가 메모리를 먹는다. 이 단순한 문장이 요즘 반도체 시장을 설명하는 가장 짧은 요약이다. 에이전틱 AI가 확산되면서 토큰 사용량이 폭증하고, 그 폭증이 HBM 수요로 이어지고, 수요가 공급을 앞서면서 가격이 오른다. 새 메모리 공장은 2028년은 되어야 돌아간다. 그 사이 2년 넘는 시간 동안 물건은 부족하다. 외국인들은 이 구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외국인이라고 늘 옳은 건 아니다. 그들도 틀린다. 얼마 전 5거래일 동안 24조를 팔았던 것도 그들이다. 외국인을 하나의 주체로 단순화하면 안 된다는 말도 있다. 미국계, 유럽계, 중동계 자금이 저마다 다른 이유로 움직인다. 어떤 자금은 차익 실현을 위해 팔고, 어떤 자금은 리밸런싱을 위해 산다. 같은 종목을 두고 같은 날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외국인의 순매수 전환이 눈길을 끄는 건, 그들이 가진 정보의 양과 분석의 깊이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보다 더 많은 리서치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서 더 오래 들여다본다. 그들이 7조 원을 산다는 건, 아무 이유 없이 하는 행동이 아니다. 적어도 그들 눈에는 지금 가격이 싸 보인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의 선행 PER이 6배 수준이라는 분석도 읽었다. AI 관련주 중 가장 높은 이익과 수익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글로벌 비교 기준으로는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삼성전자는 아직 제값을 못 받고 있는 주식인 셈이다. 물론 HBM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아직 숫자로 증명하지 못했다는 점이 할인 요인으로 남아 있다. SK하이닉스가 이미 HBM 프리미엄을 받고 있는 것과는 다른 위치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외국인이 산다고 해서 내가 덩달아 사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들이 틀릴 수도 있고, 그들이 사는 이유가 내 투자 성격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 움직임을 지켜보는 건, 일종의 단서를 찾는 행위다. 완벽한 지도는 없지만, 발자국이라도 따라가 보는 것.
결국 투자는 불완전한 정보들 사이에서 하나의 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외국인의 순매수는 그 정보 중 하나일 뿐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아예 무시하기도 어려운 단서. 오늘도 나는 그 발자국들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아무 버튼도 누르지 않은 채 앱을 닫았다. 내일 다시 열어볼 것이다.